- 하늘을 흘러가는 기운, 누구를 만나도 거리낌이 없다. 도덕적 용기를 의미한다. 옳곧은 정신, 신념/세력과 지위에 굽히지 않는 존재
‘낮게 생활하고 높이 생각한다.’ 삶은 간소하되 마음은 풍아(風雅)의 유유자적을 참된 인간의 고결한 생활로 여기는 선비정신의 극치가 경(敬)사상이다.
‘경’은 학문의 한 방법으로서, 진리를 이해하고 도덕적 주체를 확립하는 문으로 여겨졌다. 퇴계 이황에 이르러 이 ‘경’의 개념이 세계관, 인간관을 포함하는 철학 체계의 핵심이 되어 ‘경철학’으로 성립됐다. 퇴계는 ‘경철학’을 확립함으로써 유학을 더욱 개성있는 실천철학 선비정신으로 집대성한 사상가라 할 수 있다.
퇴계는 선비를 세력과 지위에 굽히지 않는 존재라 했다. 그는 선비정신을 세속적 권세와 비교하여 이렇게 말했다. “저들이 부유함으로 한다면 나는 인(仁)으로 하며, 저들이 벼슬로 한다면 나는 의(義)로써 하노라.” “선비는 필부로서 천자와 벗하여도 참람하지 않고, 왕이나 공경(公卿)으로서 빈곤한 선비에게 몸을 굽히더라도 욕되지 않으니, 그것은 선비가 공경되고 절의가 성립되는 까닭이라.”
율곡은 선비를 이렇게 정의한다. “마음으로 옛 성현의 도를 사모하고, 몸은 유가의 행실로 신칙하며, 입은 법도에 맞는 말을 하고 공론을 지니는 자다.” ‘인’의 포용력과 조화 정신은 선비의 화평과 인자함으로 나타나고 예의는 염치의식과 사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며, 믿음은 넓은 교우를 통해서 드러난다고 했다.
선비정신은 교육열, 공동체 사랑, 자연과 인간의 공생, 공익 이념, 자기 절제, 통합적 인문 교양을 바탕에 깔고 있다. 에리히 프롬이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경제적으로 잘사느냐 못사느냐가 아니라, 국민이 ‘소유 가치(to have)’를 추구하느냐 ‘존재 가치(to be)’를 추구하느냐로 가름된다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막스 베버는 한국의 선비를 “부도덕과 도덕의 모호한 경계를 선명하게 가르고 행동했던 문인 신분층”이라고 우러렀다. 만약 베버가 우리 옛 선비들의 ‘귀씻이(洗耳·세이), 눈씻이(洗目·세목), 돈빨래(洗錢·세전)’ 풍습까지 알았던들 우러를 정도가 아니라 경탄해 마지 않았을 것이다.
도쿄(東京)대 아베 요시오(阿部吉雄) 교수는 말한다. “조선 퇴계 이황의 경사상은 도쿠가와(德川) 정권 이데올로기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메이지(明治)유신의 원동력이 됐던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학파, 요코이 쇼난(橫井小楠)과 모토다 나가자네(元田永孚) 등은 퇴계를 신처럼 존경했다. 이런 사실을 오늘날 일본인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을 잊는다면 일본 문화가 발딛고 서 있는 그 정신적 기반을 완전히 도외시해 버리는 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간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물질적 풍요로움을 얻었으나, 정신적 자신감은 상실했다. 때로는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불 같은 정신으로 시대를 호령했고, 때로는 초야에 칩거하며 깊이 있는 사색으로 시대를 떠받쳤던 선비들. 하늘이 무너져도 원칙을 지키며 백성의 삶을 끌어안았고 도덕과 양심을 위해 모든 영광을 미련 없이 포기했던 선비정신이 필요한 때다.”(역사학자 한영우: 광화문 문화포럼에서)
No comments:
Post a Comment